고려시대에 창건한 암자라고 알려져 있으나 문헌이 남아있지 않아 확인할 수 없다.
1872년에 제작된 <장성부지도>에는 석수암이 그려져 있고 관청에서 25리라고 표기돼있다. 1927년에 발간된 <장성읍지>에는 “석수암(石水庵)-황룡면 수연산에 있다. 암자 뒤 석벽에서 우물이 솟아나므로 석수암이라 이름 지어졌다. 무신년(1908년) 병화(兵火)로 불타서 병인년(1926년)에 김형종이 중건했다”고 기록돼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망암 변이중 선생(1546~1611)이 석수암에서 집안 모임을 갖고 시한수를 남겼으며 1702년 장성에 귀양 온 서파 오도일 선생(1645~1703)은 석수암을 찾아 시 3수를 남기기도 했다. 이로 미뤄보아 조선시대까지도 사찰로서 상당한 면모를 갖췄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기삼연 대장은 1896년 장성의병에 참여한 뒤 꾸준히 의병운동을 주도하면서 1907년 10월 호남창의회맹소를 결성하게 된다.
당시 회맹소 지도부는 장성, 고창, 영광 등 전라도 서부지역 양반 유생들이 많았다. 대체로 노사 기정진, 송사 기우만의 제자들이 주류를 이뤘다.
석수암 회맹소에서 호남지방 후기의병운동을 주도했고 장기항전을 거듭하게 됐다. 일제가 편찬한 <폭도편책>에서는 <1907년 10월(음 9월 24일) 장성 수연산에서 호남창의회맹소가 결성됐다>고 밝히고 있다.
당시 관련 유적으로는 장성향교에 창의비가 있고, 황룡면 아곡리 아치실에는 호남창의대장 기삼연과 독립투사 기산도의 생가가 있다.
석수암이 발견된 황룡면 관동리 수연산 일대는 현재 국방부 소속 훈련장으로 민간인은 등반이 허용되지 않는 곳이다.
/백형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