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에 추억하는 대한민국~
매번 비행기를 탈 때마다 느끼는 건 비행가 좌석이 너무 좁다는 생각이다. 편안함을 생각한 것은 차치하고 무릎을 바로 펴기도 힘들 지경이다. 물론 고급 비행기가 비즈니스 클래스를 탄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보통의 경우엔 그렇다는 것이다.
베트남까지 비행에 소요되는 5시간 남짓의 거리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좁은 공간을 참아가며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행이 인생에 주는 의미와 참가치는 고생 속에서 더 크게 각인되는 것 같다. 중고교시절 수학여행을 떠날 때 새벽부터 잠 못자고 준비하며, 비좁은 열차 칸에서 부대끼며 깔깔대던 기억이나 여관에서 열 명씩 한 방에 자면서 부대끼던 기억이 ‘결코 지워지지 않는 영화의 한 장면으로’ 평생의 뇌리에 남아있는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여행의 참 의미를 찾아가는 베트남 여행을 떠나보자.
-편집자 주-
“야간 일 좀 더 주세요” 젊은 아우성
삼성전자에 16만명 근무 ‘최고의 직장’
이번 베트남 여행은 최근 한국인들의 여행의 추세를 반영하듯 북적였다. 주말엔 보통 3천 명 정도가 베트남으로 출국한다. 사드 문제로 중국 여행에 제동이 걸리면서 동남아 쪽으로 급선회하는 관광객이 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베트남 축구의 영웅으로 추앙받는 박항서 베트남 축구감독이 유명세를 타고 있고, 문제인 대통령까지 방문하는 등 여행국으로서 최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그렇다면 베트남은 우리 한국인에게 어떤 나라인가?
아시아에서 러시아와 동맹을 맺고 있는 유일한 사회주의 국가, 그래서 중국과 팽팽한 대립관계를 지속하고 있는 나라지만 경제는 서구식을 추구하고 있다.
인구 약 1억 명, 면적은 한국의 1.5배로 큰 나라이지만 아직은 개발도상국에서 맹렬히 부상하고 있는 나라다. 하지만 2000년 이후 경제성장률이 매년 7% 내외로 7년 동안에 20%를 기록한 것을 보면 한국의 평균 3%대와는 차원을 달리하고 있다.
한국과는 월남과 월맹과의 전쟁 때 악연으로부터 시작했지만 지금은 경제적 동반자로 여러 우호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베트남 전체 수출의 35%를 한국 기업이 만들어낸 것이니 베트남으로서는 한국이 고맙지 않을 리 없다.
베트남은 한국 기업의 천국이다. 첫째 노동자 인건비가 한국의 10분의 1 수준이다. 노동력이 풍부하다. 한국의 평균 연령이 40세인데 베트남은 30세가 못된다. 삼성전자를 비롯, 조선소, 섬유회사, 금호타이어, 신발의 화승 등 수많은 기업이 진출하고 있다.
베트남의 삼성전자 공장에만 16만 명이 근무하고 있다. 베트남 정부는 삼성전자에게 34만평을 무상으로 제공했다. 베트남인들에게 삼성전자는 최고의 직장이다. 돈을 벌게 해 주기 때문이다. 한국에서처럼 야간작업을 안 하려고 데모를 하는 게 아니라, 좀더 늦게까지 야간작업을 하게 해 달라고 데모를 하는 실정이다.
“비나이다 조상신께 비나이다”
조상신 섬기는 모계주의 유교국가
1식3찬 소식 습관-뚱보 없는 나라
베트남은 많은 사람이 불교를 믿지만 조상신이 제일 위에 자리잡은 강력한 유교 국가이다. 그러면서도 여자가 시집와서 한 식구가 되면 모든 경제권을 며느리가 갖게 되는 모계사회 풍습이 강한 나라다. 이 나라는 음력 매월 1일과 15일에는 조상신에게 과일과 꽃을 바친다. 그래서 꽃 가게에 항상 사람들로 넘쳐난다. 이날은 사찰에 사람들로 붐빈다. 조상신을 모신 가족묘는 논 가운데나 마을 뒷산에 공동으로 관리되고 있다. 그리고 이 날은 부부관계도 금기시한다.
가정에서 식사는 1식3찬을 위주로 소박한 식습관이 보통이다. 아침은 특히 소식한다. 우리 한식집에서 처럼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리는 식사는 없다. 식당에서도 마찬가지다. 보통의 식당은 3~4평 정도, 테이블도 없고 작은 의자 몇 개를 좍 깔아놓고 앉아서 접시 하나에다 밥이나 국수를 먹는다. 그것도 식당 안에서나 또는 길거리에서나 먹기만 하면 그만이다. 그래서인지 베트남 사람들은 뚱뚱보가 경우가 거의 없다.
상식적으로 더운 나라여서 음식이 많이 상하지 않을까 걱정되어 냉장고가 집집마다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특별한 경우 아니면 냉장고가 없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한끼 먹을 만큼만 준비하기 때문이다. 약간 부족하다면 덜 먹으면 되는 것이고, 남으면 버리면 되는 것이다.
한국처럼 냉장고에 음식을 몽땅 넣어놓고 다음 식사 때 꺼내 재탕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습관이다.
그래서 초창기 베트남 여성들이 한국에 시집왔을 때 시어머니와 많이 다퉜던 것이 바로 이러한 문화의 차이 때문이었다.
며느리가 음식을 먹을 만큼만 적게 만들려고 하자 ‘손이 작다느니, 가난한 나라에서 시집와서 그런다느니’하며 며느리를 무시했다. 또 베트남처럼 며느리가 경제 주도권을 가져야 하는데도 ‘너는 고생만 하거라, 돈은 내가 알아서 관리한다’는 식으로 대우하자 갈등이 높아져갔던 것이다. 그래서 외국인과 결혼 할 경우 가장 먼저 문화의 차이를 이해해야 원만한 가정이 이뤄진다.
축구 영웅 박캉써를 모른 사람 없다
앙숙 태국전을 승리로 이끌어 이름값
한국에서 저녁 8시에 출발하여 하노이에 도착하니 한 밤중이다. 한국시단보다 2시간 늦으니 하노이 시간은 12시, 한국 시간은 2시다. 날씨는 한국의 초여름 수준으로 여행하기에 최고다. 서둘러 첫 밤을 호텔에서 보내고 아침에 옌뜨로 출발한다.
베트남 여행에서 옌뜨와 하노이, 다낭은 3대 필수코스의 하나로 불린다.
하노이 공항과 하롱베이 중간에 위치한 옌뜨는 외국사람에게 보다는 자국인들에게 더 의미 있는 곳이다. 대표적인 성지인 700년 된 나무들과 수백개의 사리탑, 10여개의 사찰이 모여있는 베트남 북부 관광 명소로 불교의 성지다.
많은 이곳 사람들은 옌뜨를 찾아 관광을 겸한 휴식 시간을 갖는다.
조상신을 섬기는 유교주의 색체가 강한 이 나라에서는 매월 음력 1일과 15일 정갈하게 몸과 마음을 닦고 예배를 드린다. 우리가 설날과 추석에 차례를 지내며 조상신을 모시는 의례를 매월 두 차례씩 한다고 보면 된다.
내친 김에 사찰을 찾은 관광객들에게 축구 감독 박항서를 아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고개를 갸우뚱한다. 한참을 생각하더니 “오 박캉써~”하고 두팔을 번쩍이며 외친다.
그러면 그렇지 베트남 축구의 영웅이라던 박항서를 모를리 없지. 그런데 발음이 좀 약해서 몰랐던게다. 박항서 감독이 이렇게 유명세를 탄 것은 청소년 축구가 열리기 전에 천적처럼 여겨졌던 태국과의 경기에서 국가 감독을 맡아 20년만에 승리로 이끌었기 때문이다.
우리 한일전처럼 앙숙이었던 태국을 이기면서 이미 이름값을 했던 것이다.
칼럼니스트 /백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