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끝없이 길을 가야 하는가?”
“가까이 있는 피안의 언덕을 찾아가자”
여름이 빛을 토하고 있다.
작열하는 태양 이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계절이다.
삼라만상이 불볕에 얼마나 견딜 수 있나 시험하듯 시련의 시간들이 대지에 금을 긋고 있다.
땅들은 갈라지고 곡식들은 뜨거운 열기를 사방으로 내 뿜는다. 그 천지조화 사이에 간신히 자리를 차지한 인간은 한 톨의 영향력도 없는 하찮은 미물에 불과하다.
우주조화에 지친 인간들이 하고 싶은 게 있다면 그저 대자연의 열기로부터 피하고 싶을 뿐이다.
하지만 미물인 인간은 그 ‘쉼’의 세계를 향하여 어디로 어떻게 길을 떠나야 할 지 찾기 조차 어렵다.
차안(此岸)의 사람들은 이제 피안(彼岸)의 길을 묻는 힘조차 잃은 듯하다.
그래도 기운을 차려 고개를 들면 나타나는 것이 신록이다. 사방이 푸르름이다.
신록만이 거대한 우주의 울타리를 덮고 초연하게 자태를 지키고 있다. 신록은 생명의 시작이다. 모든 것이 대자연의 섭리임을 푸른 신록만이 말해주고 있다.
그런데 이 섭리의 시작은 어디고 그 끝은 도대체 어디일까?
삶에 지친 영혼들이 피안의 세계를 넘볼 수 있는 그 언덕 자락은 어디일까? 그곳에 도달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까?
그리하여 짓눌린 우리 삶이 한 꺼풀이라도 가벼워질 수만 있다면...
그 물음에 가까이 가기 위해 신록 사이에 들어앉아 있는 산사(山寺)를 찾아보기로 한다.
때가 되면 연분홍 낙엽으로 갈아입고, 북풍한설의 혹한에 시달릴지라도 그 곳에는 우리가 찾는 그 피안의 언덕이 있으리라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행여, 산사에는 우리가 모르는 삼라만상의 이치가 숨어 있을까?
산사에서 우는 쓰르라미 울음에서 인간사 인연의 실타래를 풀 수 있을까?
그리고 산사에 머무는 스님의 세계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지혜의 강이 있을까?
그 파라미타의 언덕을 찾아 떠나기로 한다.
멀리 있는 언덕이 아니다. 우리 장성 주변에 보이는 산사를 찾아 가을을 맞는 귀뚜라미 소리와 스님의 청량한 음성을 함께 담아보는 기획시리즈를 싣기로 한다.
/프롤로그/
“왜 우리는 끝없이 길을 가야 하는가?”
산사에 가는 길은 끝없는 걸음이며 오름이다.
지향점은 낮은 데를 향할 지라도 그 위치는 오름인 것이다.
때로는 언덕 너머 길, 돌고 도는 길, 구불구불하고 먼지 나는 길도 있다.
그 길을 가다보면 저만치에서 핀 화사한 산꽃도, 그늘 밑에서 홀로 자란 잡풀도 만난다.
한 줄로 줄지어가는 개미 행렬도, 소곤대는 다람쥐도 만난다.
모두가 다 인연이다.
그런데 그냥 서 있으면 보이지 않는 것들이다.
내려놓고 보면 보이는 것들이다.
“멈추고 가만히 바라보면, 삶의 경이로움은 그대 안에,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고 있다. 삶은 목적지가 아니다. 그것은 단지 길이다. 행복과 기쁨, 그리고 자유로 데려다주는 길은 따로 없다. 행복과 기쁨, 자유 그 자체가 길이기 때문이다”
틱낫한 -삶과의 약속 중에서-
그러면 구도자의 길은 무엇일까?
그 구도에 이르는 방법의 하나가 바로 끝없는 길을 가는 것이다.
잃어버린 나를 찾아, 아상(我相)을 찾아 나섬이다.
도착하기 위해서 걷는 것이 아니라 단지 걷기 위해 걷는 것이다. 진리를 찾아 나섬이다.
걷는 길에 수많은 궁금증도 일어날 수 있다.
길을 가는데 어느 승려가 큰 스승을 찾아와 물었다.
“무엇이 가장 순수하고 때 묻지 않는 진리입니까?”
그 스승은 답으로 길가에 구르는 말똥을 가리켰다. 어쩌면 그것은 진리에 대한 불경스러운 태도였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진리를 묘사할 때 순결한 단어들만 사용했기 때문이다. 말똥으로 진리를 설명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진리가 순결한 것만은 아니었다. 진리는 더러운 것과 분리되어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진흙밭에 진리가 있을 수 있고, 말똥 속에 숨어있을 수 있다.
진리의 본질을 바라보기 위해서는 자기 안에 있는 화려하게 포장돼 있는 형용사를 내려놓아야 한다. 그러면 보인다.
맑은 영혼을 가진 틱낫한은 말한다.
“그대 안에는 행복의 씨앗 하나가 존재한다. 그 행복의 씨앗에 물을 주라. 그리고 동시에 불행의 씨앗에 물을 주는 일을 중단하라”
이제 그 위선의 포장을 풀고 참 자아를 찾아 산사로 떠나보자. 그곳에 행복의 씨앗이 있을지 모른다.
/백형모 편집국장